결혼지참금 부족하다고 신부 살해까지

2015-11-15 | 정 수지

[내 친구의 결혼식, 인도에 가다 ⑪] 종교에 따라 달라지는 인도의 결혼문화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한기가 느껴졌다. 밤새도록 틀어놓은 에어컨의 냉기로 몸은 이미 얼어붙어 있었다. 식욕도 떨어져 아침식사로 토마토 수프만 몇 숟갈 떠 먹었다. 콧물이 나오고 기침이 심해져 본능적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감기약을 챙겨먹었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원치않는 일이 바로 몸이 아픈 일이다. 스스로 몸을 챙기기도 서글프지만 그보다 여행이 아픔의 시간으로 대체되는 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을테다. 지금보다 더 상태가 안 좋아지면 어떡하나 불안해졌다. 며칠 남지 않은 여행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아픔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중이다.

오늘은 산디의 고향인 소나무키(Sonamukhi)로 떠나는 날이다. 힌두식 결혼 풍습은 신부 측에서 먼저 결혼식을 올린 후에 신랑의 집에서 다시 식을 진행하게 된다. 보통 결혼식이 끝난 후에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가기 때문에 신랑의 신부집 출입이 결혼식 당일에서야 가능했다. 하지만 산디와 쿠루티의 경우에는 소나무키(Sonamukhi)와 아마다바드(Ahmedabad)의 거리 때문에 이 부분은 지킬 수가 없었다고 한다.

"원래라면 신랑은 결혼 전에 신부집에 머무르지 못해. 결혼식 당일에 신부의 집에 들러서 신부를 데리고 가거든. 그런데 나는 아마다바드 방문이 처음이라서 여행처럼 미리 와버렸어."

뿐만 아니라 결혼 이틀 전부터 쿠루티의 집에 머물렀던 산디는 메헨디(mehndi: 헤나를 이용한 피부 장식)부터 가네쉬 푸자 (Ganesh Puja: 코끼리 머리 형상을 한 힌두교 신을 모시는 제사)까지 실제로 신랑이 함께하지 않는 의식도 참여했었다. 힌두 고유의 풍습을 깨지 않는 선에서 지켜보는 수준이었지만 이례적이긴 한 것이었다. 종교와 신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인도사람들에게도 관행을 깨트리는 예외가 존재하긴 하나보다.

이틀간 치른 혼례도 끝이 아닌 행사 일부에 불과했다. 지금부터 이동을 시작해 2000km 떨어진 곳에서 다시 결혼식이 시작된다. 산디의 어머니가 아마다바드에 오지 않은 이유도 소나무키에서의 혼례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스케일이 거대한 차원을 넘어서 인도에서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지 실감하게 된다.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아들의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니 말이다. 인도는 각 주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문화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에 예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남다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산디는 지역적인 차이보다 종교에 따라서 예식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서쪽이나 동쪽 지역의 결혼식은 크게 차이가 없어. 다만 인도의 결혼식은 두 가지로 나눠지거든. 무슬림 혹은 힌두. 종교에 따라 의상과 의식이 달라지긴 해. 우리는 둘 다 힌두교라서 힌두식 예식을 진행한 거야."

한 달 전에 결혼을 미리 알려야 한다고?

어제 결혼식 후,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마치며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 증명사진이 붙어있는 서류를 보고서 혼인신고서라 짐작은 했는데, 법적인 절차는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특이했던 점은 반드시 결혼하기 한 달 전에 결혼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혼인신고 시기가 별도로 정해지지 않은 한국과는 다르게 결혼식 한 달 전 미리 혼인을 알려야 할 의무가 존재했다. 혼인등록은 결혼식을 올린 뒤에 가능하며 이 또한 한 달 전 결혼을 미리 알리지 않으면 등록이 불가능했다. 이러한 법은 힌두교인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한다.

"인도에서는 법이 두 가지가 존재해. 하나는 힌두교 또 다른 하나는 무슬림교를 위한 거야. 당연히 나는 힌두교 법만 숙지하고 있어. 무슬림교 혼인신고 절차는 어떻게 다른지 나도 몰라."

신부 측 결혼식이 마무리되면 신부는 신랑이 사는 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아직 두 사람은 향후 거주지가 확실치 않았지만, 우선은 신랑의 고향으로 가야했다. 서로 가까운 지역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쿠루티에게는 문화도 언어도 다른 동쪽의 인도가 정말 모험이 될 것 같았다. 채식주의자만 살던 곳에서 육식주의자가 공존하는 세상은 예상보다 쉽지 않을 듯 하다. 서로의 언어를 모르기에 영어로 대화 중인 쿠루티의 오빠(서쪽)와 산디의 친구(동쪽)를 보면서 같은 나라지만 아마다바드와 소나무키는 여전히 다르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지금까지 아마다바드에서 치른 결혼식은 전부 신부 측인 쿠루티가 부담했다. 그리고 소나무키에서 진행되는 결혼은 온전히 신랑인 산디의 몫이라고 한다. 의외로 결혼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것은 한국보다 평등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한국의 예물, 예단처럼 인도에서도 서로 선물을 주고받지만, 산디와 쿠루티는 비싸지 않은 옷과 음식을 각자에게 선물하였다. 물론 개인에 따라 선물의 금액대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한국은 대체적으로 남자가 결혼자금을 더 많이 부담하는 편이지만 인도는 비용적인 면에서 신랑 신부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하지만 산디의 설명으로는 신부에게만 요구되는 '다우리(dowry, 신부가 혼인시 신랑 측에게 건네야 하는 재물)'라는 결혼지참금 문화가 존재한다고 전했다. 신부에게는 굉장히 부당한 결혼 문화로 '다우리'의 폐단을 지적하며 사라져야 할 풍습임을 강조했다.

"신부에게는 결혼 준비와는 별도로 시댁에 바쳐야 하는 지참금이 따로 있기는 해. 바로 '다우리'라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인도의 결혼 문화야. 나와 쿠루티는 다우리를 하지 않았어."

그는 다우리를 설명하면서 씁쓸함을 감추질 못했다. 다우리는 신부가 편히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 신부 측 부모님이 신랑 측에게 바치는 재물이다. "우리 딸 잘 봐주십시오" 하고 고생시키거나 무시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다우리의 규모는 전 재산을 털어내는 수준인데 물질적으로 빈곤한 가정은 이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금액이 적으면 신부가 쫓겨나거나 갖은 수모를 다 겪는다고 한다.

"내가 생각할 때 다우리는 정말 악행이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도 전역에 아직까지 다우리가 존재하고 있어. 나는 어서 빨리 다우리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생각할수록 화나는 건 아직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우리를 받고 있다는 거야. 그래도 지금 우리 세대들이 이걸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야. 나는 친구들에게도 받지 말라고 조언을 하고 있어. 나도 물론 받지 않았고, 내 친구들 대부분이 다우리를 받지 않았어."

현재 인도에서는 신부에게 받는 결혼지참금은 엄격히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참금에 만족하지 못한 신랑 측 사람들이 신부에게 해코지를 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 해악의 수준이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아간다는 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딸을 가진 부모는 자식을 짐으로까지 생각한다는데 듣고도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도 고유의 결혼 풍습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법을 무시한 채 다우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다우리로 인한 폐단을 막기 위해 많은 인도인들이 다우리를 반대하고 있는 추세야. 한순간에 사라지긴 힘들겠지만 현세대들의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해."

조상으로부터 되물림되어 온 전통을 계승하는 것은 현세대에겐 중요한 일이긴 하다. 더군다나 종교적인 관습이 뿌리깊은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는 과거에 지켜온 사상을 따르는 것이 윤리이자 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우리처럼 신부를 향한 비인격적인 대우는 비정상적인 역사의 악순환만 되풀이될 뿐이다. 잘못된 제도로 인한 폐단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근절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다우리라는 비합리적인 체제에 갇힌 많은 인도 여성들이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었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선 쿠루티의 집으로 향했다. 결혼식은 끝났지만 결혼을 축하해준 친지와 가까운 지인들은 다시 쿠루티의 집을 찾았다. 첫날처럼 케이터링(출장음식)을 불러서 하객들에게 다시 음식을 대접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정말 끝이 없는 축하와 감사가 이어졌다.

순식간에 치르는 한국결혼식은 모든 것이 섬광처럼 지나가지만, 인도의 결혼식은 마음 한편에 선명한 기억들이 도장처럼 '쾅' 하고 새겨지는 기분이다. 특히 다채로운 예식보다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끝없이 방문하는 하객들의 모습이 여전히 인상 깊었다. 얼굴만 잠시 비춰야하는 의무감이 아닌 정말 축하를 하고 잔치를 즐기는 미덕이 이곳에선 존재하는 듯했다.

서로의 언어 모르는 신랑 신부 하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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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의 케이터링 서비스는 즉석에서 짜파티를 구워준다.

집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 밖에 나와서 점심을 먹었다. 외부는 열사병 내부는 냉방병 정말 기온차를 감당하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너무 더운 날씨에 현기증을 느끼며 몇 숟갈 뜨질 못했다.

자리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는데 무언가 내 신발을 스쳐가는 느낌이 들었다. 밑을 확인하자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내 신발 위를 훑고 지나갔다. 나는 모두가 쳐다볼 정도로 큰 비명을 지르며 의자 위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소리내어 웃으면서도 나를 참 극성 맞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바... 바.. 바퀴벌레... 바퀴벌레가 지나갔어요." 
"사람 사는 데는 다 있어."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옆에 앉아있던 인도 사람이 말했다. 사람 사는 데는 다 있단다. 순간 내가 호들갑을 떨었나? 잘못한 건가 싶었다. 누군가 한 명은 나서서 처치(?)할 줄 알았지만 지나가는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아무일 없다는 듯이 계속 밥을 먹고 있다.

무심결에 내가 발을 밟아서 바퀴벌레를 죽였다면 나를 혐오스럽게 쳐다보지 않았을까 그런 기분마저 들었다. 적어도 이곳 구자라트 주에서는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에 충분한 곳이다. 살아있는 것은 죽이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 나는 아무말 없이 조용히 다리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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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마다바드를 떠나기 전에 쿠루티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짜이.

쿠루티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짜이와 쿠키를 마지막으로 맛보며 정들었던 아마다바드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나에게 특별히 와이파이도 공유해주고 사리를 입혀주었던 쿠루티 사촌은 줄 것이 있다며 쇼핑백을 내밀었다.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화장품이었다. 한 시간 전 인도 브랜드 수분크림을 사기 위해 화장품 가게를 들렀지만 물건이 없어 살 수가 없었다. 헌데 어디서 구해왔는지 무려 7개를 쇼핑백 안에 넣어두었다. 나는 돈을 챙겨주며 고맙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절대 받지 않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너를 인도에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어. 꼭 다시 놀러와."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나는 그녀를 꼬옥 껴안았다. 쿠루티 어머니도 내 손을 연신 잡으시며 언제든지 다시 아마다바드로 놀러와달라는 말을 남기셨다.

"다들 언제든지 너를 반길 것이다. 꼭 다시 놀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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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다바드에서의 마지막 산책길. 길거리에 방생된 소들이 유독 많았다.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을 찾는 소들은 저렇게 병들어 죽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도라는 상상 속의 나라. 델리-아그라-자이푸르를 거치면서도 특별했지만, 아마다바드는 내 마음이 그들의 삶 속에 젖어든 시간이었다. 단순히 친구의 결혼식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삶을 체험해보며 차분히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겪게 된 채식과 금주도 자칫 방종에 빠지기 쉬운 자유로운 여행길에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경험이었다.

우리가 차에 타려고 하자 동네 사람들까지 나와서 무슨 일이 있는지 힐끔 쳐다본다. 쿠루티 식구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자 나를 모르는 동네 사람들까지도 손을 흔들어준다. 이 풍경이 지나치게 포근하고 정겨워서 마음이 울컥했다. 내가 차를 타기 전에 쿠루티 어머니는 짜이를 만들 수 있는 가루라면서 다시 봉지 하나를 손에 쥐어주셨다. 집에 가서 짜이를 해먹으라는 말이었다. 내가 이제껏 먹었던 과자도 짜이와 함께 들어있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여러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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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디가 쿠루티를 위해 준비한 웨딩카. 나는 영광스럽게도 산디 부부와 함께 소나무키를 가는 길에 탑승했다.


산디의 식구들과 친척들까지 모두 한 비행기를 타서 그런지 전세기를 탑승한 기분이다. 아마다바드에서 콜카타 (Kolkata)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 콜카타 공항에 도착하자 큰 간판 속에 마더 테레사 얼굴이 보였다. 콜카타에 위치한 마더 테레사 하우스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배낭여행객들이 자원봉사를 위해 머물고 있다. 내가 콜카타에 간다면 가장 들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산디가 살고 있는 소나무키는 콜카타에서도 3시간 30분이 떨어져있다. 잠시 휴식을 위해 차를 멈춰 세운 곳은 작은 노점상들이 줄지어 서 있는 인도식 휴게소. 다들 짜이 한잔을 해야겠다며 주문을 하는데 솔직히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짜이를 끓이는 큰 가마솥 입구에 파리 수십 마리가 앉아있어 위생이 염려되었다.

감기 기운에 배탈까지 겹친다면 큰일나지 않을까? 그런데 차안에서 콜록이던 내가 걱정된다며 산디의 아버지는 제일 먼저 내게 짜이를 건네주셨다. 그 마음이 감사해 거절할 수 없이 전부 마셔버렸다. 잔을 비운 뒤에 주인에게 건네주니 그냥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킨다. 무슨 의미일까? 산디에게 물어보자 그냥 버려도 되는 컵이라고 말했다.

"이 토기 그릇을 그냥 버린다고? 너무 멀쩡하잖아? 씻어서 다시 쓸 수 있는 거 아니야?"

산디의 말로는 버려도 환경에 나쁘지 않고 (황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만들기도 편해서 짜이를 마실 때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잔이라고 대답했다. 주변에 아무리 찾아도 휴지통이 없어 컵이 가장 많이 쌓여있는 곳에 그냥 올려놓았다.

자정이 다 돼서야 도착한 소나무키. 가로등도 없이 칠흑같은 어둠만 깔려져 있다. 산디 아버지를 따라서 들어간 낡고 허름한 건물. 문을 열자마자 사실 표정 관리가 안 되었다. 습기에 찬 벽은 곰팡이와 얼룩으로 변색되어 있고 그 위를 작은 도마뱀들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케케묵은 담요 하나가 침대에 놓여져 있지만 절대 덮고 싶지 않았다.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굉장히 오래된 방이었다.

안토니는 괜찮다며 안으로 들어갔지만 나와 델핀은 도마뱀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다시 뛰쳐나왔다. 산디 아버지는 안 되겠다며 우리를 다른 곳으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내가 무례했던 것은 아닌지 여기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산디 아버지께서 내 어깨를 토탁이시며 말씀하셨다.

"소나무키는 굉장히 작은 시골마을이야. 대도시가 아니라서 이곳에는 호텔이 없어. 우리가 여기서 제공해줄 수 있는 건 작은 로지(Lodge, 간이 숙박 시설)뿐이야. "

두 번째 들른 숙소에선 망설임없이 가방을 풀어버렸다. 그렇게 방 두 개를 받고서 안토니와 델핀과는 처음으로 떨어져 투숙했다. 불을 켜면 나방떼가 미친듯이 빛을 향해 돌진한다. 침대 위 전등이라 벌레가 나에게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대충 땀만 씻어내려 샤워를 하는데 이상한 냄새가 났다. 손으로 물을 받아서 확인하니 황톳빛 녹물이었다. 세면대 물은 그나마 괜찮아서 대강 손으로 받아가며 몸을 씻어내었다.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려는데 에어콘 돌아가는 소리가 무섭게 들려왔다.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 현지인의 숙소에서도 집주인 친구와 함께했고, 그후에는 델핀과 안토니와 줄곧 한 방을 썼다. 이상하게 혼자가 된 지금 굉장히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방 분위기가 스산하고 시설도 불편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 나를 더 심란하게 만든 것이 방금 전 내 행동이었다. 혹시 산디 아버지께서 불쾌하시진 않았을까? 어깨를 토닥여주시며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표정이 계속 떠올라 쉽사리 잠들 수가 없었다.

5성급 호텔에서 느꼈던 만족이 평생 지속되는 것은 아닐테다. 지금 이곳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순전히 내 마음의 문제이다. 뛰쳐나가 하소연을 한다면 나는 호텔만 찾아다니는 여행만 해야할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왔던 환경도 아닌 방금 전까지 누려왔던 것을 그리워하고 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할 수가 없다.

인도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마음을 단련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지녔다. 어디로든 도망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며 나를 시험하게 한다. 적응하지 못하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손으로 우걱우걱 밥을 쑤셔넣으며 해맑게 웃을 수도 있는 곳이 바로 인도이다.

나는 소나무키에서 최고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 몸 편히 누울 곳과 이 무더운 밤을 견디게 해줄 시원한 바람까지 있는데 여기서 무엇을 더 바라야 할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주문처럼 속삭이고 있다. 이렇게 마음먹은 대로 조화를 이루어 나가면 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