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착각으로 더 머물렀더니, 하루가 선물 같았다

2015-09-30 | 정 수지

[내 친구의 결혼식, 인도에 가다⑦] 인도에선 기다리는건 당연하다고?

오전 9시 아마다바드(Ahmedabad)행 비행기. 수시는 오전 6시 30분까지 숙소 앞으로 오기로 했다. 약속시간 10분 전부터 내려가서 기다렸던 안토니는 5분이 지나자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났는데 왜 오지 않는 거지?"

약속한 시간은 6시 30분이었지만 안토니는 10분을 먼저 내려가 기다렸기 때문에 아마 체감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6시 40분이 지나자 오지 않은 수시를 운운하며 그는 다른 릭샤를 잡으려 시도했다.

"잠깐만, 5분만 더 기다려보자. 안 올 리가 없잖아."

나는 그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었다. 이틀간 그에게 교통비를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게 우리가 돈을 주려고 할 때마다 "마지막 날에 한꺼번에 받을게"하며 그는 한사코 받지 않으려고 했다. 만약 릭샤 비용을 전부 지불했다면 다른 차를 타도 상관이 없었지만, 지금 이대로 가버리면 그에게 돈을 주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서 어제 전화번호를 물어본 건가?"

전날 밤, 수시는 잠시 자신의 집을 다녀오겠다며 혹시 길이 엇갈릴 수도 있으니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했다. 델핀과 안토니는 꺼렸지만 난 별 의심 없이 번호를 알려주며 그의 번호도 받았다. 수시에게 연락을 해보며 더 기다리자고 말했지만 안토니는 이미 뿔이 나 있었다.

"더는 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오전 6시 45분을 넘기자 안토니는 멀리 도로까지 나가서 릭샤를 불러세웠다. 수시가 올 것이라 믿어 계속 전화를 해보았지만, 신호음만 들릴 뿐이었다. 출발 시간이 임박해진 우리는 또 다른 릭샤를 타고서 공항으로 이동했다.

약속을 어긴 릭샤 기사... 오히려 화를 내다니

"당신이 오지 않아 우리는 다른 릭샤를 탔다. 우리가 당신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은 나의 인도 친구를 통해서 전달하도록 하겠다."

그에게 메시지를 남기고서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휴대전화를 꺼내었을 때는 부재중 전화가 다섯 통 남겨져 있었다. 내가 다시 전화했지만 수시는 받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한 뒤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황급히 급정차하는 차량이 보였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상기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헤이!" 수시였다. 그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지만 뭐가 못마땅한지 델핀과 안토니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는 수 없이 내가 그에게 다가가 우리가 지급해야 했던 돈을 건네며 말했다.

"내 메시지를 확인했나요? 당신에게 돈을 주지 않으려 한 게 아니에요. 당신이 늦어서 우리가 다른 차를 탈 수밖에 없었어요."
"난 많이 늦지 않았어. 그 정도는 보통 기다리잖아. 이거 봐, 당신들이 공항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먼저 도착했잖아!"

아마도 수시는 우리가 떠난 뒤 바로 도착한 듯했다. 우리가 돈을 주지 않으려고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은 줄 알았단다. 나는 전화도 미리 했고 메시지도 출발 전에 보냈다. 그리고 20분 가까운 시간은 조금 늦은 게 아니다. 만약 비행기 시간에 늦었으면 당신이 책임을 질 것이냐고 반문했다.

수시가 적어도 자신이 늦은 일에 사과를 먼저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당당하게 우리가 도망간 것처럼 몰아갔다.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팁으로 함께 넣어두었던 200루피를 제외하고 나머지 금액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수시는 돈을 낚아채듯 챙기고선 이내 사라졌다. 정말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어수선하게 침체하여 있었다.

모두의 기다림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했다. 안토니와 델핀은 약속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릭샤 기사가 이미 시간을 어겼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 주어야 할 물질적 대가에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억지로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뭔가 이유도 모르게 빚지고 있다는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지만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싫었다. 와중에 수시의 말대로라면 고작 15분으로는 인도에선 기다렸다는 표현을 사용할 순 없나 보다.

"기다렸어야지. 왜 기다리지 않았어."

그의 억울했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인도에선 기다림이 당연한 거라고. 오히려 먼저 가버린 우리가 몰상식한 사람처럼 보였으니 경험도 하고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인도는 정말 느려야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어쩌면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인도에서만 존재하는 남다른 속도. 느림과 기다림의 본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다시 공항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열에 합류했다. 아마다바드(Ahmedabad)에 가서는 인도 친구를 만나게 될 테니 더는 곤란한 일은 없을 거다. 우리는 축 처진 기분을 만회하고자 티켓을 펼쳐 들고 당시 일정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경찰관이 델핀의 티켓을 보더니 황당한 말을 내뱉었다.

"당신은 공항에 들어갈 수 없어요. 오늘이 아니라 내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셋 다 항공권을 확인해보자 정말로 오늘이 아닌 내일이 출발 일자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전부 비행기 티켓을 공항에 도착해서 확인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럴 수 있지? 서로를 너무 믿은 것일까? 그저 '목요일에 출발하지', '목요일에 가잖아' 서로 이 말만 몇 번 주고받았던 것 같다. 한 명도 아니고 셋 다 수요일을 목요일로 착각하다니. 아무리 여행을 많이 하고 경험이 많아도 인간은 허점투성이라는 거다.

"차라리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출발해버리자. 자이푸르에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아."

결국 다시 향한 숙소, 모래폭풍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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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 이렇게 금방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네.

각자 뭐가 그리 이 도시에 토라졌는지 빨리 벗어나기 위해 항공사에 문의했지만 추가 요금이 꽤 많이 발생했다. 왠지 다시 호스텔로 돌아가기엔 힘 빠지는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머물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는데 여기서 더 어이가 없었던 건 우리가 숙소 날짜는 (요일을 헷갈리지 않고) 제대로 예약했다는 점. 동시에 기절하듯 쓰러져 잠에서 깨어났을 땐 맛있는 음식부터 먹자며 입을 모았다. 가이드 북에서 괜찮은 식당 한 곳을 발견한 델핀이 다 순탄한(?) 하루를 위한 일이라며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제안은 다음과 같았다. 릭샤는 편도만 탄다(왕복 혹은 좋은 일정을 소개해주겠다는 유혹은 무조건 거절).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한가지씩 한다. 그리고 불평은 더는 없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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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 동안 먹은 물통


자이푸르에 하루 더 남게 된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며 델핀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아마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불만을 쏟아냈던 아침의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 같았다.

왕복으로 저렴하게 태워주겠다는 릭샤 기사의 유혹을 뿌리치고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그런데 사진 속 식당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메뉴를 펼쳐보자 우리가 원했던 레스토랑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릭샤 기사가 왜 우리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셋이서 말없이 눈을 마주치며 얼른 빠져나왔다.

물론 짜증을 내거나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시 물어물어 찾아간 레스토랑. 음식이 기대 이상으로 맛있어서 우리는 같은 메뉴를 두 번이나 주문하며 배불리 먹었다. 점심을 먹고서 안토니는 낮잠을 한숨 더 자야겠다며 자신이 원하는 일정을 말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각자 휴식을 취했다. 정말 단순하게도 잠을 자고 배를 채우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사람이란 동물은 참 신기하다. 아침의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모습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제 먹고 쉬었다는 이유로 여유가 가득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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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음직스럽게 변해가는 짜파티(Chap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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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서는 흔한 식사 후 입가심. 민트와 설탕.

"얘들아, 일어나봐. 큰일 났어! 밖을 좀 봐."

델핀이 우리를 깨웠다. 일어나자 너무 더웠고, 이미 정전이 된 상태였다. 밖에서는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거대한 모래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분명 몇 시간 전에 해가 떠 있었는데 무슨 일이지? 가로수가 넘어가고 전선이 끊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바깥 상황을 지켜보는 순간 점점 더 무서워졌다. 모래가 굳게 닫힌 문틈 사이로 들어와 쌓일 정도로 폭풍의 위력이 대단했다.

더워서 안에 있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밖에 나가자니 모래바람에 휩쓸려 날아갈 것만 같았다. 바람이 조금 잠잠해졌을 때 안토니가 밖으로 나가더니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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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보기엔 무시무시하지만 한여름에 단비(?) 같았던 시원한 모래폭풍

"와, 진짜 시원하다. 어서 나와봐!"

델핀마저 나가서 나를 부르자 얼른 밖으로 뛰어나가 보았다. 황톳빛 바람은 안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매우 시원했다. 실내는 답답한 물속 같은 기분이었다면 밖은 바람이 참았던 숨을 내쉬는 것처럼 살아있는 기분을 전해왔다.

우리는 모래로 샤워하듯 온몸으로 바람을 받아냈다. 이상하게 모래가 여기저기 피부에 박히는 느낌이 나쁘지가 않았다. 뭔가 따끔하면서도 후련했던 모래바람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개운한 기분이었다.

자이푸르에서 보낸 선물 같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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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선은 없지만 신기하게 구분되어지는 그들만의 도로.


델핀은 자신이 오늘 머무르고 싶었던 ('숙소도 다시 예약해야 되는 거 아닌가' 착각했을 때 잠시 알아본) 람바그 호텔(Rambagh Palace)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지만 우선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을 따라갔다.

호텔 내부는 인도의 왕실 궁궐에 초대받은 듯한 특별함이 전해지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분명 인생에서 손꼽히는 황홀하고 장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최고급 호텔이었다.

도착해 보니 투숙객을 위한 이벤트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화로로 액세서리를 만드는 모습이 신기해 구경하자 다짜고짜 내 팔 치수를 재더니 즉석에서 팔찌를 만들어주었다. 감사하지만 돈을 지불할 수 없다며 팔찌를 돌려주자 세공인은 다시 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아름다운 당신이 인도에 와주신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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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찌가 만들어지기 5분 전

내가 웃으며 한 번 더 거절했지만, 그는 계속 괜찮다며 받아두라고 한다. 진열대에서 비슷한 디자인의 팔찌 가격을 보니 500~700루피를 받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작은 귀걸이를 150루피에 구매한 뒤 테이블로 돌아왔다. 음료만 시키고 음식을 주문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서 오늘은 자신이 내겠다며 델핀이 귓속말을 해주었다. 메뉴판을 건네주며 함께 음식을 나눠 먹자고 말하는 친구의 감사한 배려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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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워서 정말로 아름다워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야외무대에서는 은은한 조명 아래 형형색색의 사리를 입은 여인들이 전통춤을 추고 있다. 호텔의 주인이 따로 사들였다는 성곽은 건너편 산 중턱에서 고혹적인 금빛을 자아낸다. 덕분에 주변 야경이 일품이다.

온전히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 매 초마다 전해진다. 시선이 가는 곳마다 환상적인 혜택을 받는 기분이다. 악단의 연주가 신나서 크게 박수를 치자 모두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서 연주해준다.

단지 기분이 좋아서 행복하다기 보다 오늘 같은 하루를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하루의 시작은 이곳을 떠나려는 시도였지만, 머무르지 않았으면 후회로 남았을 선물 같은 날로 마무리했다. 정시에 떠나야 한다는 압박, '초'에 맞춰진 삶에서 벗어난 뜻밖의 선물.
자이푸르에서 쉬어가기.

 

기사원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47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