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강남스타일', 인도에서도 통했다

2015-10-10 | 정 수지


[내 친구의 결혼식, 인도에 가다⑧] 아마다바드 사람들의 결혼식 전 날

자이푸르 (Jaipur)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만에 아마다바드 (Ahmadabad)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장을 빠져나오자 예비신부 쿠루티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마다바드에 온 것을 환영해. 여기까지 와줘서 정말로 고마워" 

쿠루티는 함께 있던 남자 두 명을 자신의 오빠(my brother) 라고 소개했다. 당연히 두 사람 다 친남매라고 생각해서 가족관계를 물었더니 한 명은 친오빠, 다른 한 명은 그냥 동네에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라 다시 알려주었다.

"우리는 한 동네에서 오래 알고 지낸 사람도 가족처럼 생각해." 

공항 밖을 나서자 살인적인 더위가 도시 전체를 삶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델리부터 이곳 아마드바드까지 이동하면 할수록 숨쉬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얼른 차를 타서 에어콘 바람을 쐬는데 살 것 같은 게 아니라 머리가 울리고 띵한 기분마저 느껴졌다.

아무 생각없이 창문에 기대어 도시의 분위기를 살펴보는데 대도시에서 느껴지는 활기차고 복잡한 분위기가 전해졌다. 자이푸르(Jaipur)가 핑크빛에 물들어 있는 따뜻한 느낌이었다면, 아마다바드는 회색과 미색이 묘하게 뒤섞인 건물들이 잘 배열된 계획 도시 같았다. 잠시 차가 막혀서 서 있는데 언뜻 봐도 간디의 형상 같은 동상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간디가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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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디가 오랜기간 머물렀던 Hriday Kunj 입구

"쿠루티, 저 동상 간디 아니야?" 
"아마다바드 (Ahmadabad)는 간디(Mahatma Gandhi)의 도시이기도 해."

쿠루티는 자신의 고향인 아마다바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인구가 350만 이상되는 대도시에 자이푸르처럼 직물산업이 발달했고, 최근엔 공업도 발달 중이라고 한다. 인도의 민족운동 중심지였고, 간디가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의 거점을 삼았다고 전했다. 자신의 출신 학교라는 구자라트대학(Gujarat University)도 간디가 독립운동을 위해 창설한 곳이라고 하는데 들을수록 간디의 영향이 이 도시 곳곳에 서려 있는 게 느껴졌다.

내가 간디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사상가, 독립운동가, 비폭력주의, 채식 등이 전부였다. 가이드 북을 꺼내 아마다바드와 관련된 간디의 정보를 찾아봤지만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쿠루티의 설명만 들었을 때 가치 있고 중요한 역사가 존재하는 듯했는데, 책에 없는 게 이상할 정도다. 반면에 델핀은 쿠루티의 설명을 들으면서 자신의 가이드북에 적힌 아마다바드 정보를 열심히 읽어나갔다.

"너희 모두 인도 전통의상을 입을 거지? 우리 오빠가 너희와 함께 옷을 사러 가줄 거야." 

쿠루티는 내일 예식을 준비해야 한다며 자신을 대신해서 오후에 테자스(쿠루티의 오빠)가 우리를 데리러 올 것이라 했다. 도착한 호텔 로비는 바깥보다야 나았지만 에어콘이 전혀 가동되지 않아 굉장히 더웠다. 직원은 비오듯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우리에게 카드키를 건네주었다. 오성급 호텔에서 간헐적으로 냉방을 하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혹시 객실 안에서도 냉방이 시간에 구애를 받는 것은 아닌지 살짝 공포가 밀려왔지만, 다행히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땡큐, 땡큐" 외치며 우리는 살았다고 기뻐했다. 별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감사한지 모르겠다. 사소한 일에 놀라고, 또 감사하게 되는 인도는 여전히 예상 밖의 일이 넘쳐난다.

쿠루티의 오빠가 오기 전까지 3~4시간이 남아있었다. 안토니는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어버리고 우리는 시내 구경이라도 할 겸 호텔 직원의 추천을 받아 'Hriday Kunj'라는 곳으로 향했다. 간디가 독립운동을 위해 오랜 기간 머물었던 거처라고 하는데, 탁 트인 강가를 전망으로 작은 오두막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오두막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자, 한 여인이 앉아 물레를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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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riday Kunj에서 물레를 돌리고 있던 여인

"한 번 해볼래요? 만져도 됩니다."

구경하는 나에게 그가 오라고 손짓을 해준다. 그 친절한 부름에 다가가 목화 뭉치를 만지며 물레를 돌리는 순간 스르륵 바퀴가 감기며 얇은 실이 되어버렸다. 간디는 이렇게 직접 물레질을 하며 자신의 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여인이 설명을 덧붙였다.

물레 뿐만 아니라 그가 실제로 사용한 숟가락, 펜, 신발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의 검소한 삶을 여실히 증명하는 소박한 물건들은 오랜 세월에 많이 녹슬어 버린 자취가 베어 있었다. 이 공간에서 느껴지는 간소하고 수수한 분위기는 간디의 실천적인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이런 단출한 살림에 비해서 내가 여행을 위해 가져온 짐이 더 많다는 사실이 민망하기 그지 없었다. 소유에서 벗어나 더 많이 존재할 수 있는 삶은 아직 멀고도 머나먼 길인가보다.

한국의 광장시장 같았던 인도 시내

다시 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테자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들은 정말 준비할 것이 많다며 먼저 나와 델핀을 옷가게로 데리고 갔다. 도착한 곳은 시내 한복판, 마치 한국 광장시장의 한복 거리처럼 곳곳에 '사리(Sari)'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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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의 전통의상 사리(Sari)가게 풍경. 마치 한복 가게를 연상케한다. 우리는 1000루피에 (한화 17000원 정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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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수선집인 줄 알았는데 그의 집이기도 했다.

우리는 테자스 사촌의 아내와 함께 여러 가게를 둘러봤는데, 직접 원단을 만져보고 디자인과 색상을 선택하는 식이었다.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선택한 뒤 재단을 해서 몸에 맞춰야했다. 우리가 입을 옷은 사리가 아닌 '레헹가 촐리(Lehenga chol)'로 투피스로 나눠진 허리를 훤히 드러내는 드레스였다. 모든 전통의상을 사리라고 칭하는 줄 알았지만 그건 허리나 어깨에 두르는 긴너비의 천을 일컫는 말이었다. 우리가 입은 레헹가 촐리에 사리로 상반신을 덮는다면 사리패션이 되는 식이었다.

나는 검은색 상의와 빨간색 치마를, 델핀은 파란색 상의와 핑크색 치마를 선택했다. 옷가게를 나와서는 어느 동네 어귀에 있는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곳에선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를 맞이해주셨는데, 슬쩍 낡은 재봉틀만 보아도 경력이 수십 년쯤 돼 보이는 수선집 같았다. 할아버지는 줄자를 가져오시더니 나와 델핀의 치수를 꼼꼼히 재어주셨다. 테자스 말로는 당장은 수선이 안 되고, 내일 오전쯤 가능하니 자신이 찾아서 전달해주겠다고 했다.

쇼핑이 끝난 뒤 쿠루티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을 방문했다. 집 안은 이미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내일이면 부부가 될 산디와 쿠루티를 시작으로 사리를 입은 여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우리를 반겨주었다. 다들 쿠루티의 친척 혹은 이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혼식 전날에 모여 이렇게 손님을 맞이하고 축하하는 문화에서 그들 사이의 돈독한 유대관계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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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과 노래를 가르쳐주었던 쿠루티의 친척들과 맨디 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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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맛있게 잘 먹자 더 먹으라고 그릇째 쥐어주시던 쿠루티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집안 곳곳을 장식한 가족 사진에서는 정겨움과 포근함이 가득 묻어났다. 테자스의 부인은 우리에게 간식과 차를 제공해주었는데 콩과 채소로 만든 쿠키와 홈메이드 짜이였다. 쿠키는 신기하게 짠맛과 단맛이 동시에 났고, 짜이는 정말 맛있었는데 인도에서 먹어본 것 중에 단연 최고였다. 너무 맛있어서 두 잔이나 마시곤 혹시 비법이 따로 있는지 레시피까지 물어보았다.

쿠루티 어머니께서는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며 작년 가족 여행 사진을 보여주셨다. "나는 한국 음식 어떠셨어요?" "어떤 음식이 제일 맛있으셨나요?"라고 물었지만 음식 때문에 고생만 했다며 쿠루티가 자신의 가족 모두가 채식주의자라고 말했다.

도시 사람 대부분이 채식주의자

"우리는 한국에서 단 한 번도 바깥에서 음식을 사 먹지 않았어. 사실 구자라트(Gujarat: 인도 서부의 주. 아마다바드는 구자라트 주에서 가장 큰 도시다-기자 말) 사람 대부분은 엄격한 채식주의자야. 구자라트 주에서의 채식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상속된 문화적 관행처럼 이어져왔어. 솔직히 이렇게 먹게 된 습관은 카스트(흰두교 사회의 계급), 공동체, 종교적인 관계 때문일 수도 있어. 하지만 여기선 계급이나 공동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지역의 위치인 듯 해. 우리가 구자라트에 살고 있다는 거."

열흘 동안 여행을 하면서 한 번도 음식을 사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계속 숙소에서 인도에서 가져 온 식재료로 음식을 해 먹었다고 말하는데, 들을 수록 쿠루티 가족이 한국에서 음식을 찾는 일이 고행처럼 들려 왔다.

그러고 보니 양념 치킨, 불고기 등 맛있는 한국 음식을 선보이고자 했지만 쿠루티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주변을 꽤 헤맸던 기억이 났다. 채식을 하는 사람과 처음 식사를 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상대가 외국인이고 게다가 한국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기에 메뉴 선정이 참 힘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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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집에서 만나게 된 한국의 전통 장식품


결국 검색 끝에 들어가게 된 산중음식(사찰 토속음식) 전문점에서 밑반찬으로 나온 감자볶음을 메인요리처럼 먹던 쿠루티. 건강상의 이유도 있지만 자신의 신념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채식을 해왔고 술도 마셔본 적이 없다고 당시에도 말했었다. 그 말에 적잖게 놀랐던 나는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 살아온 차이 만큼이나 정말 생각과 행동이 다르구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신기하게 여기 직접 와서 겪어보니 그때 쿠루티가 느꼈을 한국이라는 이질적인 환경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과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도에서는 신부의 가까운 여성 지인들이 모여 맨디(피부 위에 그리는 그림)를 한다. 일종의 예식 준비를 시작하는 행위라고 하는데, 꼭 결혼식 전날에 모여서 작업을 한다고 한다. 꽃을 그리는지 태양을 그리는지 알 수 없는 패턴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완성된 그림은 너무도 화려하고 근사했다. 맨디 작업이 끝나고 쿠루티의 친척들이 내일 결혼식 때 춰야한다며 인도 전통 춤을 배워 보지 않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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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를 알 수 없는 근사한 문양의 맨디
ⓒ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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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배우고 싶지! 나 가르쳐줘!!"

내가 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반색하며 천천히 율동을 알려주었다. 아래위로 대각선 방향으로 박수를 치고 한바퀴 돌면서 자리를 옮기는 간단한 춤이었다. 인도에서 현재 유행하는 노래와 춤을 더 알려주며 급기야는 싸이의 '강남스타일'까지 이어졌다. 축제 분위기는 온 집안을 흥으로 버무려놓았다.

인도의 결혼식.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흥겨운데 본식은 얼마나 더 재미있을지 기대가 된다.